제목 김인환 | 미술평론가


장 성 순


김인환 | 미술평론가


  현대 여명기에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한 전후 추상미술은 식민지 시대의 질곡을 벗어나고 (8.15 해방), 참담한 내전을 겪은 후 (6.25동란)1950년대 후반에 점화되었다.1956년에 결성된 현대미술가협회가 그 구심점이며 이로서 이른바 엥포르멜 운동이라고 지칭되는 추상표현주의 물결의 서막이 열려진다. 여기 참여한 미술가들은 해방 후에 국내에 개설된 대학의 미술전문학과를 통해 배출된 제 1세대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장성순은 현대미협의 창립멤버로서 박서보 김창렬 하인두 등과 더불어 현대미술운동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선두주자의 한 사람이다. 현대미협이 발전적으로 해체되고 새로 등장한 전위 집단인 악뛰엘회(62)에도 그는 참여하였다. 조선일보사가 주최한 한국현대작가초대전(59년창립)은 당시의 진보세력을 망라한 큰 전시였는데 여기 초대작가이기도 하다. 1961년 제2회 파리비엔날레에 참여함으로써 국제전에 발판을 놓은 최초의 작가로도 기록된다. 이렇듯 한국의 현대미술운동에서 전위의 기수를 자임한 장성순의 작품세계는 당시로서는 파격 그 자체였다. 실제 작품을 접하지 못한 평론가 이일은 단편적인 기록에 의존해 그의 작품을 ‘특히 동양적인 기(氣)에 바탕을 둔 서예적인 검은 회(劃)에 의한 필법을 돋보이게 한 것’이라고 인용·평가하고 있다. 사실 현대미협전에 대한 이경성의 신문논평도, ‘놀라운 힘의 집단, 놀라운 미의 잔학행위라는 문구를 쓴걸 보면 그 실상이 어떠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주로 폭이 넓은 붓을 사용했으며, 대형화면에 비정형(非定形)의 획으로 몰아붙이는 운필작업, 그 획들은 신체적 제스츄어가 수반된 작업이라는 점, 따라서 화면 전체가 바탕을 포함하여 역동적 화면공간을 이루게 된다. 캔버스 외곽을 두르는 액자조차 거세되어 있었다. 장성순은 자신의 회화적 세계관을 이렇게 피력한 적이 있다.

 

  “나의 작품세계는 다분히 직관과 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한 바탕에서 인식된 인간의 삶 그 자체의 내용에 포함된 현실성과 체험들이 빚어낸 환상적 기호들을 순수한 조형요소의 구성에 의하여 회화화하려 한다. 이때 화면에 표출된 ···색채등의 조형요소는 어디까지나 추상이다.”

 
  장성순이 90년대 중반 이후에 발표된 작품명제에 한결같이 <추상>으로 명명하고 그것을 고집한 이유는 추상적 표현을 통해서만 무한한 정신성의 자유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으며 그러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일관되게 추상미술가였던 셈이다 사람들은 추상회화에서의 비인간성을 비난하지만 회화에서의 인간성이란 묘사된 객체가 아니라 주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갈파하기도 했었다. 70년대 이후 화가는 개인전과 일련의 여러 초대전을 통해 부단히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대중적 심미안과 취향에 타협하거나 굴복함이 없이 회화적 집념 하나로 버텨온 그는 어려운 경제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왔다. 서서히 일기 시작한 경제적 호황이 일시적으로나마 인기미술가를 양산하여 부를 축적한 화가도 생겼는데 그것들은 항상 이 화가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작품 59-B>(1959년작)<0의 지대>(1961년작)는 이 화가의 순수한 열정으로 작품제작에 임했던 절정기의 작품이다. 그야말로 미의 잔학행위로 비쳤을만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격식을 부정한 파열음과 혼돈이 내제된 작품이다. 여기서 우리는 앵포르멜 미학의 본연과 마주치게 된다. 거의 모노크롬으로 처리되고 있는 이들 화면에서의 구성적 요소는 획과 반점의 필법상의 대비이다. 이일은 장선순의 작품을 두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여 설명한 적이 있는데 이 두 작품이 적절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첫 번째 유형은 화면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긋는다는 행위의 궤적으로서의 획이며 그 집약적인 역동감과 정신적 집중의 표출이라는 것이다(<작품 59-B>의 경우). 두 번째는 역동적 획이 자취를 감춘 대신 여백의 장으로서의 회화공간이 화면에 주역이 되고 있는 것(<0의 지대>의 경우)이다.

 

  일종의 서법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유분방한 붓놀림의 활기찬 기호공간이 극작에 이르러서는 보다 관조적으로 내밀화되는 하나의 경지에 이른다. 그것은 장성순의 추상의 요체였다. 획과 반점, 단색적 통합색조, 오토마시즘, 올오버 페인팅의 요소를 고루 갖춘 그의 작품은 서정적 추상(추상표현주의)의 정착시기를 반영하는 중요한 예증이 된다. 50·60년대에 함께 집단적인 전위운동에 관여했던 동연배의 화가들이 시류에 편승하여 이합집산을 보일 때에도 장성순은 거기 부화뇌동 하지 않았다. 그는 그야말로 외곬으로 자기 길만을 추구했다. 철저한 추상미술의 신봉자로서 그가 지닌 순교자적 자세는 귀감이 될만한 면이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부단한 내적 침전작용이 거둔 결실이며 성취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