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추상, 그 집념의 회화 세계" 이일 | 미술평론가


추상, 그 집념의 회화 세계


이일 | 미술평론가




  흔히 우리는 「8.15세대」라든가 또는 「6.25세대」라는 용어를 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겨우 5년이라는 세월의 간격을 두고 연이어 엄청난 역사적.민족적 사건을 겪었다. 바로 8.15 광복과 6.25 한국 전쟁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이 나라 역사의 커다란 변혁을 가져왔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미술계도 그예외일 수는 없다.

  연대적으로 5년이라는 간격이라고는 하나 「8.15세대」와 「6.25세대」의 시대적 배경과 상황은 판이하다. 이 자리에서 민족사적인 논의를 펼칠 의사는 없으나, 적어도 우리 미술계의 경우, 전자는 일제 식민지하에서의 우리 근대미술의 태동기, 후자는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형성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이 양자간의 관계를 두고 볼 때, 「8.15세대」는 한국 근대회화 전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함과 동시에 또 한편으로는 「6.25세대」에 의한 현대미술 형성에 있어서의 「교량적」인 역할을 또한 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마디로 「6.25세대」라고 하기는 했으나, 보다 엄격하게 말해서 이 세대의 주역들은 동족상잔의 민족적 비극과 함께 그들의 젊음을 살아야 했던 당시 20대의 젊은 군상들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한국 현대미술은 이 세대와 함께 태어나거니와, 그것을 가리켜 한국 현대미술 「제1세대」라 불러도 무방할 듯 싶다. 장성순이 바로 그 세대의 기수의 한 사람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최초의 현대미술 운동이 구체적인 집단적 형태로 나타나기는 1956년의 「현대미협」창설과 함께이다. 그리고 그것이 표방하고 나선 것이 「전위」임을 자처한 추상미술, 그것도 흔히 지적되듯이 「앵포르멜 풍」의 추상미술이었다. 그리고 거의 당시 20대 후반의 회원으로 구성된 「현대미협」은 그 창립전(1956)부터 '61년에 이르기까지 매년 두차례의 회원전을 여는 열기로 충만해 있었다.

  장성순은 그 「현대미협」의 창립 맴버의 한 사람으로서 그 창립전부터 모든 회원전에 적극 참여했으며 이와 아울러 당시의 또 다른 전위미술 집단인 「Actuel전」(1962-1964)에도 참가했다. 그리고 그와 같은 활동이 장성순으로 하여금 우리나라 언론 기관으로서는 최초로 현대미술 운동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조선일보 주최의 「한국현대작가 초대전」에 그 창립전(1959)부터 계속 초대작가가 되게 한 것이다.

  장성순과 나와의 첫 만남은 그 옛날,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그 해의 제2회 파리 비엔날레 때의 일이다. (참고로 부연하건데 이 해의 또 다른 한국의 참가 작가는 김창렬.정창섭 등이고 그 다음 회인 '63년 제 3회에는 회화의 박서보.윤명로, 조각에는 최기원이 출품했다. 그리고 나자신은 61, 63, 65년이 세차례에 걸쳐 한국의 「현지대표」의 자격으로 비엔날레 오프닝 행사에 참석했다.) 「만남」이라고 했으나 물론 그것은 화가와의 직접적인 만남이 아니라, 작품과의 만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그때의 출품작이 어떤 성향의 것이었느냐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을 리는 없다. 그나마도 당시의 출품작의 사진이 남아있기는 하되, 이 역시 회화적 차원에서의 기록내지는 「증언」으로서는 미흡하다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더듬어 돌이켜 보건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몇차례에 걸친 그 당시의 춤품작 모두가 한결같이 「앵포르멜 풍」 일색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실이 곧 당시의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앞서 두 일련의 집단적인 전위미술 운동과 관련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남겨진 당시의 「증언」은 단편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장성순의 경우라고 해서 그 예외일 수는 없다. 또 그러기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당시의 기록에 의존할 수 밖에 없으며 이 또한 선별적으로 소개하는 것으로 그친다. 그 중에서도 우선 들 수 있는 것이 1958년 제 4회 「현대미협전」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이경성의 논평이다. '놀라운 힘의 집단, 놀라운 美의 모독이 아니다. 그것은 일체의 권위를 일단 부정하고 0에서 새로이 출발하려는 그들의 순수한 심적 동기와 청년의 용기의 소산인 것이다.'

  이와 같은 전체적인 열기 가운데서 당시의 단편적인 기록으로 미루어 보건데 장성순의 작품은 특히 동양적인 기(氣)에 바탕을 둔 서예적인 검은 「획(劃)」에 의한 필법을 돋보이게 한 것으로 보인다. 주로 폭이 넓은 붓에 의한 그 획들은 신체적 제스츄어가 수반한 필력에 의해 화면 전체가 그 바탕을 포함하여 하나의 역동적 회화 공간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장성순이 첫 개인전을 갖게 되는 것은 그로부터 훨씬 뒤인 1975년에 가서의 일이다. 그처럼 정력적인 활동을 보인 한 작가로서는 어쩌면 뒤늦은 「데뷔전」이라 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90년까지 여섯차례의 개인전을 꾸민다. 생각컨대 60년대의 미술 풍토, 다시 말해서 당시의 「집단적」인 전위미술 운동의 상황에서 아마도 「개인 플레이」라는 것이 뒷전으로 밀려난 가능성이 없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같은 연배의 동료 화가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대동소이한 현상이라 여겨진다. (이와 함께 장성순에게 있어 그의 개인전과 관련된 자료가 거의 보관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개인전과는 별도로 장성순의 「개인적」인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도 역시 어림잡아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터이며, 그 무대는 일련의 「초대전」이다. 여기에서는 그가 참가한 주요 초대전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친다. 「한국미술대상전」(한국일보) : 1972-1974, 「한국현대작가 100인전」(국립현대미술관) : 1973, 「서울현대미술제」 : 1975-1978, 「중앙미술대전」초대 : 1980, 「한국현대미술 20년의 동향전」(국립현대미술관) : 1980, 「현대미술 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 1983-1990,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전」(국립현대미술관) : 1987, 「한국현대미술 50년전」(국립현대미술관) : 1995, 「대한민국 원로작가 초대전」(서울시립미술관) : 1996, 등등... 이들 모두가 국내에서 매우 비중이 큰 초대전임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바야흐로 고희를 맞게 되는 장성순이 그동안의 작업을 결산이라도 하듯이 이번에 모처럼만의 개인전을 꾸미게 되는 것이다.

  일곱 번째가 되는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95-96년 제작의 최근작들이다. 이들 작품에는 한결같이 <추상>이라는 표제가 붙여져 있으며 또 모두가 100-120호의 대작들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또한 300호 이상의 2부작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근작을 두고 볼 때 그 「추상」의 기본 이념에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으며, 그 어떤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그 추상세계가 연륜과 더불어 보다 더 내재화(內在化)되고 또한 관조적인 것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는 점이라 할 것이다. 실제로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것이 곧 필법의 대범함이라 할 것이며 이를 두고 우리는 흔히 「경지(境地)」라고 한다.

  장성순의 「추상」은 거의가 모노크롬의 회화 세계이다. 다름이 아니라 회화를 구성하는 획(劃)과 반점 등이 다같이 모노크롬이라는 말이다. 실질적으로 장성순회화의 기조(基調)를 이루고 있는 것이 이들 획과 반점의 필법상의 대비이거니와, 그 운필의 변주가 곧 화면으로 하여금 각기 특유의 공간적 리듬을 지니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적 리듬에 따라 장성순의 화풍은 크게 두가지 유형으로 나뉘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첫 번째 유형의 경우, 화면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긋는다」는 행위의 궤적으로서의 획이며 여기에 있어서는 붓자욱 하나하나가 물리적 흔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집약적인 역동감과 함께 정신적 집중과 그 표출로서 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획들은 필세(筆勢)의 강약과 함께 획 상호간의 긴장감을 또한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화면 공간 전체에로 확산되어 가는 것이다.

  한편 두 번째의 경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첫 번째와는 대조적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는 역동적 획이 자취를 감추고 그대신 「여백의장(場)」으로서의 화화 공간이 화면의 주역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두고 바로 동양적인 무위자연의 생성적 공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거기에서는 그 아무 것도 규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화면을 스쳐가는 듯한 붓자욱이 모든 것을 표백시켜 가는 듯 하면서도 그 연후에 다시 되살아나는 일종의 우주적 생성의 드라마를 그 여백의 장에서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유동적이며 그것은 마치 세월의 흔적과도 같은 것이기도 하다.

  <추상, 그 집념의 회화 세계>라고 했다. 한마디로 장성순은 추상회화에 대한 집념으로 살아 온 화가이다. 그것도 시류에 편승함이 없이 오로지 자신의 길만을 외곬으로 살아 온 화가이다. 이번의 「고희전」은 말하자면 그 한 평생의 결산이라 할만한 것이다. 그 결산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이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