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직관과 감성에 의한 순수의 추상표현" 유재길 | 미술비평ㆍ홍익대학교 교수


직관과 감성에 의한 순수의 추상표현

유재길 | 미술비평.홍익대학교 교수 


  장성순은 1927년 생으로 해방 이후 1960년대 전후 한국 추상미술의 탄생과 전개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였던 원로 작가이다. 이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과 작품에 대한 이해는 매우 미약하다. 그러나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그의 추상작품과 활동은 상당히 중요하게 기록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한국 현대미술의 출발에서 가장 중요한 1957현대미술가협회창립멤버 역할이나 전위그룹인 악뛰엘참여, 그리고 1961년 파리비엔날레와 상파울로 비엔날레, 카뉴 회화제 등 국제전 활동 등이며, 50여년 일관된 추상 양식의 작품제작은 '직관과 감성의 순수한 추상표현'으로 장성순 예술세계를 높이 평가하게 된다.

 

  이처럼 반적 이해와 달리 미술사적 가치로 그의 추상회화는 여러 면에서 새로운 해석을 필요로 한다. 본고에서는 50여년 추상표현이라는 하나의 양식을 집요하게 추구하여 왔던 장성순의 작품세계를 직관과 감성의 독자적 조형언어로 해석하면서 그의 추상표현에 새롭게 접근하고자 한다.

 

 

  먼저 그의 작품세계 출발점으로 언급되는 1950년대는 대상의 사실적 묘사부터 시작한다. 이는 인물과 정물, 그리고 풍경 등 리얼리티의 접근이다. 1957현대미술가협회창립전에 출품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소년>이나 <해바라기> 등은 대상의 사실성에 충실한 구상화이다. 그러나 곧바로 그의 회화는 전통적 구상과 달리 새로운 모티브와 형식을 모색한다. ''이라는 소재와 표면의 강조는 사실 묘사보다 사물의 느낌이나 감각을 중시하는 표현이다. 이는 20세기 초반부터 많은 모더니스트 화가들이 추구하였던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앵포르멜이라는 비정형 작품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장성순의 '' 연작은 사물의 사실성보다 느낌이나 감각을 강조하고 있다. 거친 돌과 바위의 표면을 화면에 가득 채우는 작업은 사실적 아름다움보다 본질과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이는 어린시절 병으로 인한 청각장애로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보다 침묵을 좋아하게 된 본능적 욕구로 설명하고 있다. 그는 "움직이지 않는 돌의 표면을 응시하면서 돌과 대화"를 나누면서 구체적 형상을 버리고, 정물과 풍경의 반추상화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사물의 겉모습보다 속에 감추어진 특성을 형태의 파괴와 마티에르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을 당시 미술평론가 이경성은 "피부감각적 위도에서 환상을 정착"시킨 작품이라고 지적한다. 그의 회화는 이제 사실적 형태보다 사물이 갖는 의미와 순수의 조형언어를 강조하는 추상표현으로 전개되기 시작한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추상화의 등장은 국전을 비롯한 기성세대에의 도전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도전은현대미술가협회전시와 1961년 창립된 악뛰엘그룹을 통해 드러난다. 여기에 창립 멤버로 활동하였던 장성순은 기존의 양식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표현을 추구하게 되며, 무엇보다 순수한 조형의 의미로 형상을 벗어나려 한다. 당시 참여 작가들은 자신들의 "지글지글 끓고 있는 젊은 혈기"를 강조하면서, 전통 양식과 형식에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개인 양식과 각자의 독자적 표현을 모색했다.  

 

   여기서 장성순은 앵포르멜 추상화가인 타피에스와 슐라쥬의 붓글씨 같은 서체추상의 충격 속에서 처음으로 추상 양식을 수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수용은 추상의 논리적 이론보다 직관과 감성에 의한 표현이었다고 회상한다. 그에게 추상은 이미 '' 작업에서 시작되었으며 시대의 현실적 상황으로 빠른 작업변화가 전개된다. 개인적으로 그는 식민지 시대의 암울함과 해방, 그리고 한국 전쟁의 상처, 파괴와 비애,불안,고통,절망 등 직접적 체험을 통해 사물의 본질과 자유를 추상에서 발견한다.
 

  이처럼 그의 추상화 출발은 시대적 요구와 같이 개인적으로 이성보다 감각에 의한 직관과 감성으로 수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그의 감각은 지성이나 이성보다 직관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상투적인 전통을 거부하는 감각의 논리로 그는 사물의 외형 보다 내적인 것을 본능적 직관과 감성으로 파고든다. 추상에서 감각은 물질의 정신적 표현이며, 순수의 결정체를 만들어 나간다.  

 

 

  1961년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되었던 장성순의 <작품 No.7><0의 지대> 등은 직관과 감성의 추상표현, 혹은 비정형(앵포르멜, informel)양식이다. 이러한 화풍은 근작에서도 볼 수 있는 그의 추상표현이다.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는 작가의 행위성을 강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미국의 액션 페인팅과 유사하며, 두터운 마티에르 효과는 서체추상의 앵포르멜에 가깝다. 당시 그의 추상화를 무겁고 어두운 색채들로 암울한 느낌을 준다고 하여 "문명의 잔해, 혹은 인간 형상 이전의 실존적 표현"이라고 설명하였으나, 이러한 해석은 단편적인 지적이다.

   

  오히려 그의 작품세계는 1997년 회고전에서 이일의 평론에서 밝혀진 "관조적, 내재화로 변형이며, 운필의 변주와 특유의 공간적 리듬"을 중요시한 것으로 "1)긋는 것, 행위의 궤적, 물리적 힘이 아닌 정신적 표현, 역동성, 긴장감의 강조와 2)여백의 장, 동양적 무위자연, 생성 공간"이라고 분석한 것에 공감하게 된다. 여기서 공간과 두터운 마티에르의 물질감, 행위성 등 물감의 뿌려짐과 그어진 선들은 순수의 조형언어로 원초적 힘을 선사한다. , 행위를 통한 직관과 감성의 추상표현이다.  

 

   

  1970년대 변화는 거즈와 마대 등 불규칙한 사각의 형태를 캔버스에 붙이는 추상작업으로 행위보다 마티에르, 또는 물질의 집착이다. 이는 역동성이나 긴장감보다 질감의 변화와 생성공간이라는 여백과 사각형의 변화에의 관심이다. 아울러 공간은 섬유의 물질성이 강조되어 형태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이후 변화는 행위의 재등장과 청색 계통의 단색조 등장, 그리고 마티에르의 투명함이 돋보이는 붓질의 겹침 등 감성적 추상표현 양식을 유지시키고 있다. 최근 작업에도 마티에르와 생성 공간으로 여백이 지속되는 중요한 조형언어로 나타난다. 특히 그의 후기 회화에서 마티에르는 투명함을 특성으로 물성보다 정신을 강조한다. 이는 표면의 직접적 표현에서 벗어나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감각의 축제처럼 느껴진다. 행위의 자유, 의식의 자유는 더욱 더 본능적 감각으로 직관과 감성에 의해 순수 조형언어를 다듬어 나간다. 비물질로 마티에르는 구체적 이미지를 감출 뿐만 아니라 과거의 시대적 고통이나 우울, 슬픈 흔적을 덮어나가는 느낌이다.  

 

   

  이제 50여년 지속된 장성순의 추상미술이 갖는 진정한 가치란 무엇인가를 묻게 된다. 이는 미술사적 평가보다 그의 추상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그의 추상은 새로운 개념이나 형식이 돋보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어려운 시대적 상황에서 그림이 좋아 그림을 그렸으며, 기존의 형식에 안주하지 않고 추상을 선택하여 반세기를 이끌어 왔다. 그의 추상은 분명 장식품이나 여가선용의 취미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어려운 시대적 상황과 답답함 속에서 영원의 정신적 자유를 갈망하며 추구하였던 것이 추상이다. 그가 가진 것은 이론이나 누구의 직접적 지도가 아닌 자기 자신이 갖고 있는 감각뿐이었다. 직관과 감성, 이것이 그의 추상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후기 작품에서도 직관과 감성은 무의식에 가까운 그린다는 행위를 받쳐주고 있다. 화면에서 질서와 조화의 계산보다 직관에 의한 화면 곳곳에 자신의 존재를 심어나간다. 마치 그림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각인시키는 작업처럼 물감의 흔적을 만든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초기에 제작된 추상이나 근작의 후기 추상까지 양식적으로 큰 변화는 없다. 행위의 역동성과 마티에르는 여전하며, 새로운 이야기나 주제 변화 없이 지루한 추상표현을 이끌고 있다. 약간의 변화라면 마티에르나 색채 등에서 얇거나 투명함, 그리고 무겁고 어두운 색채가 밝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정도이다.

 

  장성순의 추상은 양식보다 내용적 변화를 요구한다. 그의 일관된 추상표현은 침묵 속에 이루어진 작가 자신과의 대화이다. 아름다움은 시각적이기 보다 침묵으로 이루어진 내면의 소리이다. 때로 절규의 몸짓처럼 수 천 번의 반복된 붓질과 물감의 흔적이 겉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나 곧 지워지고 다시 그려나가는 반복된 행위, 이러한 행위가 근작까지 이어진다. 이것이 순수를 지향하고자 하는 추상의 조형언어이며, 내면과의 싸움으로 자아를 확인하고자 하는 예술세계이다.

 

   

  오랜 시간 장성순은 직관과 감성을 바탕으로 순수의 조형언어를 창조하고자 노력하여 왔다. 사회적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도 한순간의 멈춤도 없이 반세기를 넘게 이를 유지해 온 것에 경외감을 느낀다. 아울러 물질적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림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 깊은 신뢰감이 만들어진다. 더 나아가 그의 추상화는 이론이나 개념보다 감각적 아름다움의 순수 조형세계임을 확인하게 된다. 무한의 정신적 자유와 인간의 내면세계를 소박하게 드러내 보여주고자 하는 장성순의 추상표현에서 우리는 '직관''감성'에 의한 독자적 조형언어로 해석하면서 한국 현대미술에서의 그의 위상을 다시 생각해 본다.